정신장애인이 겪는 고통 중에는 스스로도 통제하기 힘든 폭력적인 생각이나 충동이 포함될 때가 있다. 하지만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는 사회적 낙인 때문에 당사자들은 이를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치료 현장조차 이를 다룰 준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국의 대안 정신의학 매체 '매드 인 아메리카(Mad in America)'는 최근 임상사회복지사 조딘 토비(Jordyn Tovey)의 기고문을 통해 정신의학계가 환자의 타살 사고(homicidal ideation)를 어떻게 외면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인권 친화적으로 다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심층적으로 조명했다.
폭력적 사고는 범죄가 아닌 '고통'의 호소
미국 미시간 의과대학 외래 정신과에서 초기 조현병 및 우울증 환자를 주로 만나는 토비는 최근 비대면 진료 중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한 젊은 남성 환자가 대규모 폭력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고백한 것이다. 환자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명백히 고통받고 있었다. 토비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허세나 위협이 아니라 극심한 고통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토비는 "그는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는 듯했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환자의 동의와 가족의 협조를 얻어 입원 치료가 결정됐고, 이는 표면적으로 성공적인 위기 개입처럼 보였다. 하지만 토비는 이 과정이 철저한 매뉴얼이나 훈련이 아닌 운과 직관에 기댄 결과였다고 고백했다. 토비는 "이러한 개입의 성공은 훈련의 결과라기보다 임기응변적인 직관에 의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만약 환자가 자신의 생각을 숨겼거나, 치료적 동맹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경찰이 출동하는 등 환자에게 새로운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방식으로 상황이 악화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살 사고와 대비되는 타살 사고의 소외
기고문은 임상 현장에서 자살 사고와 타살 사고를 다루는 방식의 극명한 차이를 꼬집었다. 임상가들은 자살 사고에 대해 묻는 법을 지속적으로 훈련받고, 위험을 평가하는 다양한 도구를 갖추고 있다. 토비는 "자살에 관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훈련받지만, 타살 사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자살 위기 시에는 환자에게 입원의 목적과 한계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치료적 언어'가 존재하지만, 타살 사고를 호소하는 환자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준비 부족은 임상가들이 환자의 폭력적 사고를 마주했을 때 과소반응하거나 과대반응하는 양극단의 위험을 초래한다. 환자를 낙인찍을까 두려워 아예 묻기를 회피하거나,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고 곧바로 경찰이나 강제입원 등 억압적인 조치로 직행해버리는 것이다. 이는 결국 당사자가 자신의 무서운 생각을 안전하게 털어놓을 기회를 박탈한다.
낙인을 피하려다 환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역설
정신의학계가 타살 사고를 다루기 어려워하는 기저에는 '정신질환=폭력'이라는 편견을 조장하지 않으려는 강박이 자리 잡고 있다. 토비는 "정신의학은 정신질환이 폭력을 유발한다는 암시를 피하는 데 깊이 몰두해 왔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러한 선의가 오히려 임상적 책임을 방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토비는 "정신질환과 폭력에 대한 해로운 서사를 강화하지 않으려다 보니, 우리는 아예 그 주제를 피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고 경고했다.
폭력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질병이 아닌 복합적인 사회 문제다. 토비는 "폭력은 단순히 정신건강 문제가 아니라 문화, 제도, 접근성, 그리고 우리가 위해와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에 의해 형성되는 사회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료실 안에서 환자가 폭력적인 환상이나 분노를 고백할 때, 임상가는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토비는 "미국의 임상가로서 우리는 환자를 용의자로 만들지 않으면서 그들의 고백을 책임감 있게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사자를 잠재적 범죄자가 아닌 온전한 주체로 대우해야
환자가 타인을 해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 이를 범죄의 전조로만 취급하는 것은 당사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토비는 "목표는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생각을 주의 깊은 탐색이 필요한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경험으로 다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임상가들이 환자를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직접적으로 폭력적 사고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무조건적인 응급 개입이나 경찰 신고가 아닌, 안전 계획 수립부터 모니터링, 입원에 이르는 점진적이고 유연한 대응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환자들이 자신의 통제 불가능한 생각에 공포를 느낄 때, 차분하게 위험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과정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준비된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토비는 "환자들이 기꺼이 이러한 생각들을 치료 과정으로 가져오려 한다면, 정신의학은 이를 수용할 더 나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신장애인이 자신의 가장 어둡고 두려운 마음조차 범죄화될 걱정 없이 안전하게 꺼내놓을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치료와 인권 보장이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