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가기 싫은 게 아니다" 방 문을 잠근 청년들이 한국 사회에 던진 명확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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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가기 싫은 게 아니다" 방 문을 잠근 청년들이 한국 사회에 던진 명확한 경고

홍보지원업무담당 0 27 04.22 14:34
토론회 앞.jpgphoto=송국클럽하우스

 

 

고립과 은둔을 개인의 나약함이나 의지 부족으로 치부해 온 우리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에 제동을 거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부산에 울려 퍼졌다. 지난 16일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는 송국클럽하우스와 해운대구정신건강복지센터가 주최하고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한 '고립청년의 일상회복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개최됐다. 관계기관 종사자와 정책 관계자는 물론, 정신장애와 고립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와 가족 등 80여 명이 모인 이 자리는 고립을 질병이나 일탈이 아닌 '관계의 단절'로 바라보고 민관 협력 체계를 모색하는 뜨거운 공론장이었다.

 

이날 토론회는 송국클럽하우스가 지난 3년간 진행해 온 '만나 봐요, 집 밖의 숲' 사업의 성과 보고로 막을 올렸다. 메타버스 플랫폼과 가정방문,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연계한 이 사업은 3년간 48명의 고립 청년을 발굴해 냈으며, 메타버스 공간에만 누적 616명이 참여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현장의 실무자들이 닦아놓은 길에 2025년부터 해운대구청이 협력 사업으로 동참하며 공공의 힘을 보탰다는 점은 민관 협력의 우수 사례로 주목받았다.

 

사업에 직접 참여하며 일상을 회복해 가고 있는 당사자 손현식 씨의 발언은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손현식 씨는 "내가 타고난 것은 내성적인 성향뿐이다. 완벽주의와 시도에 대한 두려움은 실패에 가혹한 사회적 시선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고립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사회적 프레임을 당사자의 언어로 부순 것이다. 이어 손현식 씨는 "우리가 나가기 싫은 게 아니다. 또 좌절이 반복될까 봐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토로하며, 은둔 청년들이 겪는 심리적 장벽의 실체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은둔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전문가들의 기조강연도 이어졌다. 13년간 히키코모리 및 고립청년 지원 현장에서 활동해 온 사회적협동조합 내비두의 오오쿠사 미노루 국제협력팀장은 은둔의 구조를 불교의 '인(因)·연(縁)·과(果)' 개념으로 설명했다. 낮밤이 뒤바뀌거나 게임에 몰두하고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현상들은 모두 고립의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오쿠사 미노루 팀장은 "은둔이란 이 세상에 '내 자리'가 없는 상태"라고 정의하며, 우리 사회가 따뜻한 봄이 되어줄 때 청년들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스로 고립과 은둔을 경험한 당사자이자 안무서운회사를 이끄는 유승규 대표는 현재 대한민국 지원 정책의 맹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전국에 공공 전담센터가 시범사업을 포함해 6곳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외래형 중심이라 적극적인 개입 서비스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참여자의 58%가 다시 고립된다는 통계는 본질적인 지원이 부재하다는 증거로 제시됐다. 유승규 대표는 "성공 사례만 부각되면서 지금 은둔 중인 청년에게 '나도 했는데 왜 못하냐'는 압박이 반복된다"고 지적하며, 이른바 '생존자 편향'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사회적 관계가 완전히 차단된 이들의 이야기가 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고립의 경험을 현장의 전문성으로 승화시키는 역발상과 함께 의료·당사자·복지 인력의 협업 구조 구축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해결책 마련을 위한 토론에서는 당사자의 주체성과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거듭 강조됐다. 옥진 부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는 "사회적 고립은 구조적·관계적·개인적 요소들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한다. 해결도 네트워크 방식이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그는 핀란드의 오흐야모 센터와 캐나다의 파운드리 모델 등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해운대구의 META 모델을 학문적으로 조명했다. 옥진 교수는 "당사자가 수혜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주체성을 찾도록 돕는 것이 사업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한준 인제대학교 겸임교수는 당사자 손현식 씨와 함께 부산시에 제안할 구체적인 정책을 발표하며 당사자 참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한준 교수는 "당사자가 직접 말할 수 있어야 정책이 현실과 맞닿는다"고 강조했다.

 

정신장애 당사자의 생생한 탈고립 여정도 공유되어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안무서운회사의 강노율 씨는 성격장애 진단을 받은 후 겪어야 했던 사회적 시선의 변화와 이를 극복해 낸 과정을 담담히 풀어냈다. 강노율 씨는 "고립은 나약함이 아니라 하나의 생존 방식이었다"고 고백하며, 진단명으로 인한 낙인을 걷어내고 연결을 회복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알렸다. 그는 실패의 경험조차 회복의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 내에 저강도 일자리와 정신건강 전문가가 동행하는 중간 단계 서비스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디어의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세미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는 언론이 고립 청년을 소비하는 방식을 비판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자극적인 이미지나 극소수의 범죄 사례를 은둔 청년과 결부시키는 보도 행태가 당사자들을 더욱 음지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박세미 활동가는 "고립·은둔 청년의 삶을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보도, 공감의 시선으로 접근하는 미디어의 변화 없이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도 요원하다"고 비판했다.

 

이날 송국클럽하우스는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부산청년미래센터의 고립청년 공동체성 및 정신건강 회복 커뮤니티 구축, 구·군 단위 중심의 민관 협력 네트워크 정착, 고립청년 회복지원 공간 마련, 심리적 안전망 중심의 초단시간 근로 일터 모델 개발 등을 핵심 정책으로 제안했다. 48명의 청년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낸 3년의 궤적은 공공이 손을 내밀고 당사자가 직접 정책을 설계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증명했다. 봄은 누군가 억지로 문을 열어젖힐 때가 아니라, 문밖에 머물러 기다려줄 때 비로소 찾아온다. 이번 토론회가 정신장애와 고립을 겪는 모든 청년들을 위한 따뜻한 기다림의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마인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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