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정신병이 가족 탓이라고? / 강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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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신병이 가족 탓이라고? / 강병철

[기고] 정신병이 가족 탓이라고? / 강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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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1.02.15. 오전 7:32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도서출판 꿈꿀자유 대표

지인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해 승진을 거듭했다. 집안 좋은 전문직 남성과 결혼했을 때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친구들이 만류했지만 육아에 전념한다 했다. 굳이 둘이 벌 필요도 없었다. 팔자 좋다고 다들 입을 비쭉거렸다. 바삐 사느라 소식이 끊겼으나 아이가 조현병이란 소문을 들었다. 아이를 감당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남편과 점점 멀어졌다. 대화가 뜸해졌고, 외박이 잦더니 이혼을 요구했다. 갈라서면서 속상한 일이 많았지만 시어머니의 말이 지워지지 않는다 했다. “네 아이 네가 키웠지, 누가 키웠니?” 남편은 생활비를 잘 보내지 않는다. 경력단절여성이 되어 취업도 어렵다. 그녀는 연금에 의존해 사는 친정 부모의 도움으로 정신이 온전치 않은 아이와 함께 근근이 살아간다.


나는 정신질환을 앓는 딸의 아빠다. 한국에서 가장 좋다는 의대를 나온 의사이기도 하다. 인맥을 동원해 의사와 상담가를 찾아다니고,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었지만 아이는 두차례 입원을 거쳐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그 길고 어둡던 시절, 딱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부모의 잘못이 아닙니다!” 많은 의사와 상담가를 만났지만 그 한마디 속 시원하게 해준 사람이 없었다. 은근히 가족 문제가 없는지 묻고, 너그럽게 대하라는 둥, 아이에게 귀를 기울이라는 둥 충고를 하는 데는 미칠 지경이었다. 그 말들은 고스란히 비난과 의심의 비수로 심장에 박혔다. 밤이 두려웠다. 우리가 정말 나쁜 부모였나? 혹여 말이나 행동을 잘못해 상처를 준 적은 없었을까? 부모의 욕망을 부당하게 자식에게 투사하여 병이 생긴 것은 아닐까? 날 밝을 때까지 자기검열의 고문을 받았다.

<한겨레> 2월6일치 ‘이단아 읽기’란 꼭지에서 박홍규 선생은 “골방에 갇힌 조현병 환자들을 찬란한 태양 아래로 해방시키고… 환자들의 삶과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하려” 했다며 로널드 데이비드 랭의 책을 소개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랭은 질병의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시킨 죄를 지었다. “어린 시절 겪는 가족 내 갈등과 병든 양육 태도” 때문에 “참 자아가 약화”되어 “거짓 자아로 세상과 상호작용할 때 조현병을 겪을 위험에 빠진다”는 말은 완전한 소설이다. 가족을 비난하는 것은 무지몽매했던 시대 정신의학의 경향이었다. 자폐는 “냉장고 엄마”, 조현병은 “조현병을 만드는 어머니” 탓이고, 우울증은 “부모의 벌을 피해 미리 스스로 벌주는 것”, 자살은 “부모에 대한 분노가 자신을 향한 것”, 피해망상은 “6개월 이전에 젖을 토했을 때 언젠가 엄마가 복수하리라 생각해 생긴”다고 했다. 이것이 혁명적인 생각인가? 사실 이런 무지야말로 지금도 수많은 가족을 절망과 불행에 빠뜨리는 주범이다. 정신질환을 생물학적 질병으로 보지 않고 엄마 때문, 가족 때문이라 비난하는 태도보다 환자와 가족에게 유해한 것은 없다. 여성이 억압받는 사회에서 그것은 고스란히 엄마의 짐이었다. 수많은 여성이 비난받고, 이혼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월5일치 서평 ‘가족이라는 이름의 기저질환’도 마찬가지다. “불안정한 가족 형태의 양육은, 조현병에 취약한 소인을 가진 사람에게 충분한 발병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말, “마음의 ‘항상성’이 무너진 여러 환자의 마음을 해부해 그 기저에 가족이 자리 잡고 있음을 조용히 보여줄 뿐”이란 기자의 말은 고통받는 가족에 대해 부당한 편견과 차별을 부추긴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너희 또한 그럴지 모르니 자기검열 잘하란 말인가?

우리는 캐나다에 산다. 아이는 대학에 다니고, 아르바이트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어려움이 많지만, 아주 작은 미래를 꿈꿀 만큼 좋아졌다. 이곳 의료 덕이라고 믿는다. 두가지가 달랐다. 첫째, 의사나 상담사가 꼬치꼬치 가족역동을 캐거나, 주제넘은 조언을 하지 않는다. 둘째, 가족에게 끊임없이 교육을 제공한다. 큰 기대 없이 가족교육에 나간 날, 꿈에 그리던 말을 듣고 기어이 눈물이 터졌다. “정신질환은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암이나 심장병처럼 그저 불운이고, 열심히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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