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나아졌을지 몰라도 내 인생의 기억은 사라졌다"… ECT 경험자 97%가 호소한 충격적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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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나아졌을지 몰라도 내 인생의 기억은 사라졌다"… ECT 경험자 97%가 호소한 충격적 부작용

발라드 0 25 01.05 14:22

의사가 말하는 '치료 효과'와 당사자가 겪는 '삶의 현실'은 왜 이토록 다를까. 전 세계 41개국 766명의 전기충격요법(ECT) 경험자가 입을 열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10명 중 9명 이상이 부작용을 호소했고, 80% 이상이 기억을 잃었다고 답했다. 누군가는 우울감이 줄었다고 했지만, 아무도 기억력이 좋아졌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인생 역사가 송두리째 지워지는 고통과 뇌가 망가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치료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적 경험을 토로했다. 병원 문을 나선 뒤 남겨진 후유증은 오롯이 당사자의 몫이었다. "내 인생을 살려냈다"는 소수 의견과 "내 자아를 파괴했다"는 다수의 비명 사이,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할까. 의료진의 차트에는 없는, 그러나 당사자의 몸에는 선명히 새겨진 ECT의 진짜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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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충격요법(ECT), 치료인가 폭력인가... 당사자 766명의 목소리가 던진 충격적 보고서

정신의료 현장에서 ‘최후의 수단’ 혹은 ‘드라마틱한 치료법’으로 포장되어 온 전기충격요법(ECT)의 실체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의료진이 주도하는 임상 연구가 아닌, 실제 시술을 받은 당사자들의 주관적 경험을 분석한 대규모 국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치료 효과라는 명분 뒤에 가려져 있던 심각한 기억 상실과 트라우마, 그리고 인권 침해의 소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스트 런던 대학교(University of East London)의 존 리드(John Read)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최근 ‘정동장애 저널(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에 ECT를 경험한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연구팀은 2024년 1월부터 9월까지 41개국 766명의 ECT 경험자 및 그 가족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참여자의 약 절반(48.8%)이 한 가지 이상의 긍정적인 효과를 자발적으로 보고했으나, 거의 모든 참여자(96.9%)가 한 가지 이상의 부정적인 효과를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는 의료진이 작성한 차트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압도적인 부작용 호소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긍정적인 효과만을 보고한 비율은 고작 3.2%에 불과했다. 반면 부정적인 효과만을 보고한 비율은 51.2%에 달했다. 연구 저자들은 "이러한 결과의 가변성은 1938년 도입된 이래 ECT가 의학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시술 중 하나가 된 현실을 고려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의료계가 주장해 온 안전성과 효과성에 대한 신화가 당사자의 삶 속에서는 전혀 다르게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억 상실이었다. 응답자의 81.6%가 기억 상실을 호소했으며, 이는 전체 부작용 중 가장 빈번하게 언급됐다.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었다. 많은 당사자가 자신의 인생 역사가 담긴 자서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의 영구적 손실을 증언했다. 긍정적 효과로 기분 개선(23.2%)이나 자살 충동 감소(12.6%)가 언급되기도 했으나, 그 어떤 응답자도 ECT가 기억력을 향상시켰다고 보고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응답자의 29.0%는 집중력 저하, 정보 처리 속도 지연 등 기억 상실을 넘어선 전반적인 인지 기능 저하를 겪었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5%의 당사자는 자신의 경험을 "뇌 손상과 관련된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기술했다.

 

신체적, 인지적 손상뿐만 아니라 심리적 외상 또한 심각한 수준이었다. 약 8%의 응답자는 치료 과정에서 학대당하거나 침해당했다고 느꼈으며, 일부는 ECT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재활성화했다고 보고했다. 연구팀은 "ECT에 대한 공포나 불안이 6.8%에서 보고됐으며, 5.4%는 기억 상실이나 성격 변화로 인한 대인관계의 손상을 경험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병원 문을 나선 뒤 당사자들이 겪어야 하는 삶의 붕괴를 의미한다. 병원 안에서의 '증상 완화'가 병원 밖에서의 '삶의 질 추락'으로 이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이번 연구는 기존 연구들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기획됐다. 그동안의 ECT 연구는 주로 의료진의 평가에 의존하거나 단기적인 결과만을 측정해 왔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우리는 병원 환경 밖에서, 그리고 즉각적인 치료 기간을 넘어서 경험되는 혜택과 해로움을 모두 포착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당사자들이 자신의 언어로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직접 기술하게 함으로써, 임상 척도에 갇혀 있던 ECT의 실체를 삶의 맥락으로 끌어낸 것이다.

 

물론 연구의 한계도 존재한다. 온라인을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표본이기에 ECT에 대해 특히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입장을 가진 이들이 과대 대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기억 상실 자체가 주요 부작용인 만큼 회상 편향의 문제도 배제할 수 없다. 연구 저자들은 "대조군이나 표준화된 임상 평가가 없었기에 보고된 효과가 전적으로 ECT에 의한 것인지 인과관계를 확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수백 명의 당사자가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기억의 상실'과 '존엄의 훼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이번 연구 결과는 ECT를 둘러싼 오랜 논쟁에 새로운 불을 지폈다. 1930년대 후반 도입된 이후 ECT는 강압적 사용의 역사와 불투명한 기전으로 인해 끊임없이 비판받아 왔다. 켈리 맥패든(Kelly McFadden) 기자는 "ECT는 여전히 장기적인 안전성과 효과가 결론 나지 않은 치료법이며, 지역에 따라 사용 빈도가 크게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일부 임상의들은 여전히 이를 안전한 치료법으로 홍보하고 있다.

 

문제는 '치유'를 정의하는 권력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점이다. 의료계는 증상의 감소를 치유로 보지만, 당사자에게는 정체성의 보존과 사회적 기능의 회복이 진정한 치유다. 연구팀은 "임상적 척도는 종종 증상 변화를 강조하면서 회복의 사회적, 관계적, 정체성 차원을 간과한다"고 비판했다.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동의(Informed Consent)가 부재한 상황에서, 장기적인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받지 못한 채 시행되는 ECT는 치료가 아닌 폭력이 될 수 있다.

 

맥패든 기자는 "생존자들의 증언과 장기적인 결과는 자주 무시되거나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으며, 치료 자체가 아닌 기저 질환 탓으로 돌려지곤 했다"고 꼬집었다. 이번 연구는 바로 그 '무시되었던 목소리'가 사실은 가장 중요한 임상적 증거임을 역설하고 있다. 당사자의 경험이 배제된 의학적 지식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며, 때로는 그 자체로 인권 침해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제 한국의 정신보건 현장에서도 ECT의 효용성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겪는 기억의 상실과 삶의 파괴에 대해 엄중하게 귀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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