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뺏는다고 해결 안 돼"... 청소년 병들게 하는 진짜 주범은 '불평등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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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뺏는다고 해결 안 돼"... 청소년 병들게 하는 진짜 주범은 '불평등 사회'

홍보지원업무담당 0 18 03.04 14:44

호주가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접속을 원천 차단하며 '스크린 타임'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나, 이것이 과연 청소년 정신건강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의문이 제기됐다. 통계학자 애비 카투스는 스크린 타임과 정신질환 사이의 인과관계가 연구상 불분명하다는 점을 짚으며, 청소년을 병들게 하는 진짜 원인은 심화되는 '부의 불평등'과 '사회적 관계의 파편화'라고 진단했다. 삭막해진 현실 경제와 고립된 사회 구조가 청소년을 디지털 도피처로 내몰고 있음에도, 정책 입안자들은 구조적 빈곤과 기술 기업의 착취 구조를 개혁하는 대신 스마트폰 화면만을 탓하며 손쉬운 '도덕적 안도감'을 찾고 있다는 지적이다.


스크린샷 2026-03-03 205300.pngphoto=Mad in America

 

스마트폰이 청소년을 병들게 하는가, 아니면 병든 사회가 그들을 스크린으로 내모는가?

호주 소셜미디어 금지법이 던지는 질문… '스크린 타임' 논쟁 너머의 불평등과 고립을 직시해야

지난해 말 호주는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금지하는 강력한 법안을 시행했다. 16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은 특정 소셜미디어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Gavin Newsom)과 플로리다 주지사 론 디샌티스(Ron DeSantis) 등 미국의 유력 정치인들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며 '온라인 안전' 정책에 힘을 싣고 있다. 이 정책의 표면적 의도는 명확하다. 중독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유해 콘텐츠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고, 소위 '스크린 타임(screen time)'을 줄여 정신건강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계학자이자 역학자인 애비 카투스(Abby Cartus)는 이러한 접근이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날카로운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는 과연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일까.

 

스크린 타임과 정신건강의 상관관계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메타(Meta)의 내부 문건은 "우리는 십대 소녀 3명 중 1명에게 신체 이미지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폭로했다. 또한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아이들이 온라인에 머무를수록 더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카투스는 기존 연구 문헌들이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강력하게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애비 카투스는 "문헌은 한마디로 혼란스러워서, 청소년 정신건강 관점에서 스크린 타임이 좋은지, 나쁜지, 아니면 중립적인지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2년과 2023년의 연구 종합 결과는 스크린 타임과 우울, 불안 사이의 연관성이 작거나 일관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왜 연구 결과는 우리의 직관과 다를까. 카투스는 우리가 "스크린 타임이 청소년 정신건강에 좋은가, 나쁜가?"라는 잘못된 질문에 매몰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질문은 스크린 타임과 정신건강 사이의 더 깊은 사회적 맥락을 차단해버리기 때문이다. 단순히 스크린을 많이 보는 행위 자체가 정신건강을 직접적으로 악화시킨다는 가정은, 그 이면에 존재하는 거대한 구조적 원인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카투스는 "스크린 타임이라는 개념의 존재 자체가 더 깊고 근본적인 사회적, 경제적 과정을 반영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스크린 타임 증가와 청소년의 정신적 고통을 동시에 유발하는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카투스는 '부의 불평등(wealth inequality)'을 지목한다. 극심해지는 부의 집중과 빈곤은 그 자체로 정신건강에 치명적이다. 임금 정체, 물가 상승, 사회적 안전망의 붕괴는 청소년들에게 분노와 절망, 무가치함을 심어준다. 카투스는 "증가하는 부의 불평등이 스크린 타임 증가와 청소년 정신건강 악화 모두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현실의 삶이 팍팍해질수록, 사람들은 디지털 세계로 도피하거나 그곳에서 위안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기술 기업들은 이러한 불평등한 구조 위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지난 20여 년간 소비자 기술의 폭발적 성장과 소셜미디어의 부상은 전례 없는 부의 집중을 가져왔다. 이들 기업의 이윤은 사람들이 플랫폼에 머무르는 시간에 비례한다. 카투스는 "스크린 타임은 사람들이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확립된 인간의 연결 및 의사소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훨씬 더 큰 과정에 대한 정량화 가능한 대리 지표일 뿐"이라고 정의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과정을 가속화했다. 원격 수업과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고, 연결을 촉진하던 '실제 삶'의 공간은 사라져갔다.

 

헬렌 엡스타인(Helen Epstein)은 저서 <왜 사는가: 자살은 어떻게 전염병이 되는가>에서 자살의 유행을 사회적 관계의 붕괴와 연결 지었다. 전통적 경제에서 시장화된 경제로의 급격한 전환이 사람들이 사랑을 표현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방식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술 중심의 사회 재편도 이와 유사하다. 청소년들은 대면 연결과 실제 공간에서 소외된 채, AI 챗봇에게 말을 걸거나 규제되지 않은 기술 제품에서 연결의 모조품을 찾고 있다. 카투스는 "당신이 우울한 이유는 세상이 점점 더 삭막하고 외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당신이 휴대전화를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스크린 타임이 문제라는 시각은, 스크린 타임이 지배하는 세상이 곧 불평등이 심화되고 인간관계가 파편화된 세상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금지하는 것은 당장 눈앞의 증상을 완화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는 없다. 카투스는 "근본적인 경제 구조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금지 조치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전망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관점에서도 이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사회는 정신적 고통의 원인을 개인의 뇌 기능이나 특정 행동(스마트폰 중독 등)으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진정한 원인은 우리가 발 딛고 선 사회의 구조적 모순, 즉 빈곤과 고립, 그리고 인간적인 유대감을 상품화해버린 자본의 탐욕에 있을지 모른다. 청소년들이, 그리고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스크린 속으로 숨어드는 것은 그들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현실 세계가 그들을 품어주지 못할 만큼 차갑고 불평등하기 때문은 아닐까. 진정한 치유는 스마트폰을 뺏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없이도 외롭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


<마인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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