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권력, 특권, 그리고 서사 통제: ‘정신건강’ 기득권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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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권력, 특권, 그리고 서사 통제: ‘정신건강’ 기득권의 민낯

발라드 0 48 05.14 16:17

“치료와 정신건강이 정치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스스로 정리해보려 한다. 내 생각이 얼마나 독창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살펴보자.” 영국의 위기지원 서비스에서 일하는 데이비드 한센은 이렇게 글을 시작했다. 그는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정치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치료는 정치적이다. ‘정신건강’도 정치적이다. 당연하다”고 단언했다.

한센은 “‘정치적’과 ‘비정치적’ 사이에 선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그런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세상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그 선이 존재한다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며 "막연한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치료사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갖는 이해관계를 솔직히 고백한다. “내가 개인 상담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이해관계가 있다. 이게 내가 내담자를 자립시키려는 목표와 충돌할 수도 있다. 만약 이 이해관계를 무시하면, 내담자가 상담을 그만둘 때 느끼는 내 불안이 그들의 복지를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고, 그러면 추가 상담을 권유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는 “윤리적 실천이란 이해관계를 인식하고, 윤리적 행동과 자기 이익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한센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의식적으로 인지하는 이해관계가 있지만, 분명히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며 "심지어 불편해서 외면하고 싶은 이해관계도 있다”고 털어놨다. “예를 들어 ‘비건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을 갖고 있지만, 치즈를 좋아해서 동물 고통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아요. 심지어 저는 가끔 고기도 먹어요. 누구나 이런 자기모순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정신건강 역사 속 이해관계  
한센은 “우리는 자신의 세계관이 사실과 논리로 합리적으로 형성된다고 믿고 싶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처지와 감정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신념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벨리치, 2022)”고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권력과 특권을 정당화하고 유지하려는 본능이 있다"며 "권력을 잃는 것은 불편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자신이 가진 권력과 특권을 정당화하는 세계관이 있습니다."

정신의학 역사에서 이런 이해관계는 여러 차례 반복됐다. 예를 들어 19세기 미국에서 노예가 도망치려는 행동을 ‘드라페토마니아’라는 정신질환으로 진단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센은 “노예가 도망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지만, 노예제를 ‘자연 질서’로 여기는 사회에서 노예제 유지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그 행동의 원인을 노예에게서 찾으려 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예로, 프로이트는 1896년 ‘히스테리’의 원인이 아동기 성적 학대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곧 입장을 바꿨다. 한센은 “프로이트가 귀족들이 자녀를 학대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뻔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후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일렉트라 콤플렉스를 주장하며 책임을 아이에게 돌렸다.

역사적으로 ‘마조히스틱 성격장애’라는 진단도 있었다. 이는 폭력적 관계에 머무는 여성에게 적용됐는데, “문제의 원인을 가해자나 사회가 아닌 피해자에게 돌리는 진단”이었다. 한센은 “이런 진단은 원래의 부정의와, 그 부정의를 가리는 서사라는 이중의 부정의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오늘날의 정신건강 시스템과 기득권  
현대에도 이런 이해관계는 여전하다. 한센은 "거대 제약회사는 ‘뇌의 화학적 불균형’이라는 본질주의적 내러티브를 퍼뜨릴 이해관계가 있다"며 "그래야 약물이 ‘정신건강 문제’의 해법으로 팔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뇌에 화학적 불균형이 있다’는 말을 듣지만, 이를 측정할 수 있는 검사는 없다"며 "어떤 정신질환도 단일한 생화학적 이상과 연결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위원장이었던 데이비드 쿠퍼는 "우리는 1970년대부터 생물학적·유전적 마커로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그 약속은 여전히 멀다"며 "우리는 수십 년 동안 환자들에게 바이오마커를 기다린다고 말해왔다"고 말했다. "지금도 기다리고 있어요."

정신과 전문의 조안나 몬크리프는 이렇게 말했다. “‘화학적 불균형’이라는 메시지는 회사 웹사이트에서 반복됩니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데도 전문가 단체와 자선단체, 언론이 이를 사실처럼 보도합니다. 이처럼 상업적 이해관계가 정신의학 지식을 왜곡했습니다.”

정신질환 진단 자체도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DSM-3 제작에 참여한 시어도어 밀론은 "DSM 제작을 이끈 체계적 연구는 거의 없었다"며 "대부분의 연구는 산발적이고 모호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내린 결정의 과학적 근거는 매우 빈약했어요." 또 다른 DSM-3 제작자인 도널드 클라인은 "결국 임상적 합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며 "세 시간 동안 논쟁을 벌였고, 끝내 표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심리학자 르네 가핀켈은 “위원회에서 벌어진 일은 과학이 아니라 친구들이 저녁 메뉴를 정하는 것과 비슷했다”고 회상했다.

이런 진단과 매뉴얼은 제약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줬다. 로버트 스피처는 “고통의 의학화는 제약회사에 거대한 시장을 열어줬다”고 인정했다. 베셀 반 데어 콜크는 "DSM-5가 일관되고 재현 가능한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연구가 발표됐지만, 미국심리학회는 DSM-IV에서 1억 달러를 벌었고 DSM-5에서도 비슷한 수익을 기대했다"며 "이런 금전적 동기가 발행을 서두르게 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센은 “진단이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진단을 강요하는 것은 권력 남용”이라고 강조했다. “사람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항상 변화합니다. 저는 남의 경험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열린 태도가 나오죠.”

한센은 “전문가가 비과학적이고 맥락 없는 진단으로 타인의 경험 해석을 독점하는 것은 폭력적 행위”라며 “지속적으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관점과 선호에 따라 지원을 공동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왜 이런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지 이해하려고 이 글을 썼다"며 "수십 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건강 시스템이 남긴 트라우마를 증언해왔고, 정신적 어려움이 극심한 경험에 적응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증거도 쌓였다. 이런 이해관계를 들여다보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한센은 "정답을 다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첫걸음"이라며 "사람 중심의 정신건강 시스템은 강력한 조직의 이익을 위협할 수 있지만, 결국 빈곤, 불안정, 고립, 서비스 부족, 아동학대 등 사회적 조건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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